[고깨창 5편] 진화론의 영향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대로..)

[고깨창 5편] 진화론의 영향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대로..)

정관념을 조과학 이야기

이상민 박사    |     3.1.2015

서론부 (창조과학 전반의 소개)

  1. 창조와 진화이야기는 과학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기원과학의 한계)
  2. 창조는 종교이고 진화는 과학인가? (진화론의 큰 믿음)
  3. 진화론의 뿌리를 알게된다면? (신학도였던 다윈도 진화론의 희생양)
  4. 세상에 올바로 알려지지 않은 진실들. (스콥스 재판 등)
  5. 진화론의 영향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대로..)

5. 진화론의 영향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대로..)

지금까지 서론에서 반복적으로 논의되었듯이, 기원(또는 관측한계 너머의 자연의 다양한 과거사건이나 결과들)에 관련된 모든 주제들은, 현재의 유한한 관측 범위안에서는 관찰, 반복 또는 재현이 안되므로, 실험과학으로는 다룰 수 없는 영역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대상들에 대한 진화론적인 설명들은, 오직 현재에 알려진 일부 관찰 지식을 바탕으로, 주관적 가정에 근거한 상상의 접근만이 가능함을(관측 한계 너머의 초기 정보도 없기에) 볼 수 있었다. 또한, 현재에도 변화를 보여주는 대상들에 대해서는, 그와 비슷한 변화를 ‘과거에도 꾸준히 해왔을 것’이라는, 역시 상상에 근거한 가설들로 그 기원이 설명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이것은 일반적인 개념의 과학(실험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단순히 사람들의 주관적인 해석(따라서 철학이나 상상)의 영역이었고, 이러한 대상들은 정답이 없으므로, 다수 또는 시대적인 유행을 따라서, 보다 그럴 듯해 보이는 답이 선택되어질 뿐이있었다. 만일, 여러분야의 자연의 기원에 대한 진정한 정답을 말하고 싶었다면, “과학으로는 답할 수 없으며, 주관적 가정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고 설명하는 것이 정답이 될 것이며, 이렇게 인정했었다면, 더이상의 소모적인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무한 장벽으로 남아 있는 듯 하다.

5.1. 주관적인 표현 예술과 진화론

기원에 관련된 자연의 여러 주제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실험과학으로 접근 할 수 없어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나 상상에 의지해야 할 때에는, 사람들의 표현 양식이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마치, 예술가들이 여러 대상들에 대하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하듯이, 때로는 시각예술로 (그림이나 조형물 등), 또는 문학예술 (추리소설이나 공상과학 등)을 이용하여, 실재하지 않거나 증명할 수 없는 대상들을 표현해 내고자 노력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이러한 다양한 예술활동을 고려한다면, 진화론은 자연의 기원을 표현하고자 노력하는 ‘표현 예술(특히 문학과 시각디자인)의 한 장르’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옛날 옛적의 자연들’이라는 여러 주제에 대하여, ‘문학적인 상상력’(그러했을 것이라는 추리나 가정들)과 ‘화려한 시각 디자인’(그렇게 생겼을 것이라는 그림이나 조형들)을 사용하여, 실험과학이 감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전혀 어려움 없이 척척(?) 해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은, 과학을 뛰어넘는 보다 넓은 활동 범위를 가지며, 자연의 기원을 ‘진화론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문학예술이나 시각예술은 아주 좋은 도구가 되며, 더 나아가 ‘진화론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5.2. 점성술과 진화론

유사 이래로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하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가져 왔으며, 그중에 별자리의 관찰과 연구를 이용하는 점성술은,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능력있는 점성술가들은 여러가지 복잡한 지식과 정보와 확율과 컴퓨터 계산으로 미래를 점쳐주고, 복채를 받게 된다. 이러한 점성술의 경우에는, 현재와 과거의 ‘유한한 관측 정보들’과, 그 ‘관측한계 너머의 미래의 대한 예측’의 관계로 구분할 수 있게된다. 관측한계 너머의 대상에 대해서는, 관찰이나 실험이 안되므로, 이 또한 실험과학의 영역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점성술을 과학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복채를 내는 사람들도 그것이 실험이 가능한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비교해서 진화론은, 그 대상이 ‘관측한계 너머의 ‘과거’의 사건(또는 현상들)’이며, 이들 또한, ‘현재의 유한한 관찰 정보들’을 사용하여 과거(점성술은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것이기에, 근본적으로 점성술과 성격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가지 큰 차이점이라면, 점성술은 시간이 지나면 그 미래에대한 정답을 반드시 확인할 수 있는 반면, 과거를 대상으로하는 진화론(또는 ‘진화술’ 이 보다 적절한 표현으로 보임)은 그 정답을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며, 이는 시간이 한방향으로만 진행되기에 일어나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따라서, 점성술은 그 예측의 결과에 언제나 큰 위험부담이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쉽게 도전할 수 없으나, 진화술(또는 진화론)은 과거의 정답을 결코 알 수 없기에 위험부담이 없이 안정적(?)이라는 특성으로인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비즈니스로 확장되었으며, 오늘날 학교와 박물관을 비롯하여 사회의 전반에 걸쳐 뿌리깊게 침투하게 되었다.

5.3.진리의 탐구에서 영리의 추구로..

서론부의 ‘지질역사해석’의 변천에 대해서 살펴보았듯이, 일부 과학자들의 ‘주관적인 가정’으로 만들어진, “지구가 오래되었을 것”이라는 오랜지구론은, 상상에 기반한(실험과학의 영역이 아니기에)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의 주관적인 선호도를 따라서 ‘과학의 결과’인 것 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대해, 보다 객관적인해석을 하고자 했다면, “…그러나 지구가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실험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에 근거한 하나의 가정이다” 라든지, “…이러한 가정을 사용할 경우에는, 오래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등의 ‘부연설명’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지질학에서의 경우만이 아니며, 그외에 기원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어 질 수 있다, 즉, 기원에대한 여러 주제에 대하여, “…그러나, 이러한 이론들은 특정 가정에 근거했을 때에 나온 결론들이며, 초기조건이 없으므로, 과학적인 이론은 아니다.”라는 부연설명을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많은 기원과 관련한 진화론 또는 진화론적인 창조론(예를 들어, 오랜 지구론을 채택하는 타협이론들 또는 다중 격변론 등)에서는, 그 대상들이 실험과학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하나의 주관적인 생각에 기반한 것”이라는 부연설명을 찾아 볼 수가 없으며, 이것은, 정답이 없음을 ‘인정’하지 않고, 마치 자신들의 철학만을 계속해서 주장하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학문의 목적의 변화와도 연관된 것이며, 한때 진리의 탐구를 목적으로하던 학문은, 인본주의 또는 자유주의적인 세계관이 확산되면서, ‘절대기준’이 사라지고 ‘상대주의’로 변함에따라서, 그 주체였던 학계에서도, ‘진리의 탐구’보다는 인간적인 ‘영리(또는 사리)의 추구’로 그 목적이 변질되어가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러한 학문의 ‘세속화’ 속에서, 오늘날의 많은 교육기관들은 ‘상업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옳고 그름과 선악을 분별하는 일에는 둔하여지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영리추구에 더 민감해졌기에, 진리는 가치를 잃고 거짓과 쉽게 타협되어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며, 이에따라서 진화론이라는 하나의 철학적인 세계관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연합’(?)되어지고 있는 현실을보게 된다.

이에대하여 디모데후서 4장 3절과 4절(공동번역)에서는 이를 한마디로 요약한다.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듣기 싫어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은 자기네 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마음에 맞는 교사들을 끌어들일 것입니다.

4. 그리고 진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꾸며낸 이야기에 마음을 팔 것입니다.

5.4.사회, 정치, 문화로 확대 (수요와 공급의 법칙대로)

이와 같이 인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물결에 힘입어, 본질적으로 ‘종교적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학계에서 시작하여 종교계와 모든 사회분야로 확대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수많은 반인간적인 문제들을 일으키는 사실을 역사는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임번삼박사의 저서, “창세기의 원역사 과학으로 말하다 (a)”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진화론이 역사에 끼친 해악으로는, 첫째는 인간의 존엄성 파괴(성경의 존귀한 존재에서 하등한 동물로 전락)이며, 둘째로 우생학에 근거한 인종차별과 인권 침해(적자생존의 지배구조)를 들 수 있다. 셋째는 제국주의의 침략에대한 정당성 부여이며, 네째는 공산주의의 도구화라 할 수 있다. 다섯째로 대다수 학문에 진화론이 기초로 탈바꿈(또는 타협) 되었으며, 여섯째는 성경의 권위실추와 기독교의 붕괴 촉진시키는 등”, 해아릴 수 없이 많은 결과를 낳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또한 오늘날의 전통적인 ‘성경적 가치관의 붕괴’와 ‘가정의 파괴’등의 연쇄적인 현상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로인하여 동성애와 낙태증가 및 결혼의 문란화 등의 많은 부가적인 사회 문제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와같은 많은 사회문제들은, 비록 이러한 진화론적 철학의 영향이 주된 원인이있더라도, 그 시대 사람들의 선택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지적할 수 있으며, 결국은 ‘공급’의 원인에는 ‘시대적인 수요’가 있었음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24장 37-39절 (개역개정)에서, 예수님이 예로 들어 설명한 노아의 시대의 모습에서 그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이상과 같은 수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되어있는 물질주의의 진화론은, 깨닫는 자들에게는 ‘엄중한 경고’의 신호이나,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로 사용되어지고 있는 듯 하다.


(a) 임번삼 저, “창세기의 원역사 과학으로 말하다” 크리스챤서적, 2014.

고깨창 서론부 (창조과학 전반의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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